TRACE
허명욱
허명욱은 낡거나 녹이 슨 문들을 수집했다. 시간 속에서 불가피하게 겪은 무수한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문의 표면은 그 위에 머물렀던 시간의 양과 강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사물도 나이를 먹는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사물의 죽음이다. 사라지는 사물의 끝은 어딘지 멜랑콜리하다. 사라짐은 존재가 겪는 독특한 사건으로 사물과 존재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사라짐으로써, 그 종말로 인해 사물은 비로소 휴식과 평안을 얻는다. 녹이 슨 문이나 페인트칠이 조금씩 벗겨진, 그래서 문득 맨살을 보여주는 문을 보고 있으면 사물들의 끝과 소멸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삶 속으로 언뜻 죽음의 그림자가 들이닥치고 현실계를 이루는 완강한 사물들의 배후가 유령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생명으로 충만한 현재의 삶이 깨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세속적인 시선이 거두어지는 것이다. 비로소 사물의 현상적 측면이 아니라 그 이면, 즉 사물의 본질을 보는 시선에 접근하게 된다. 모든 실재의 확고한 본질은 결국 공허다. 존재했던 것들은 사라진다. 인간은 그 사라짐을 응시하고 그에 대해 사유하는 존재다.
-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