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다녀가다
하정완 목사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면 좋은 사진기에 좋은 기술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면 그런 물리적인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바람이 부는 대로 사진기를 그 흐름에 맡기기도 하고 가끔은 빛이 들어오는 대로 마음껏 다 받아들여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한한 시간을 유한한 시간대로 들어오게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진가 하정완이 찍은 것이 아니라 렌즈를 열어놓고 바람이 다녀가게 한 것이다. 그리움처럼 사랑처럼 슬그머니 지나간 바람의 흔적을 묻힌 것이다. - 작가노트 中